은퇴 후 매년 얼마 쓸 수 있을까?
4% 룰과 인출 전략 5가지 비교

은퇴 자금 인출 전략을 검색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마주치는 숫자가 있다. 4%다. 1990년대 중반 윌리엄 벤겐(William Bengen)이 제시한 이후 30년 가까이 표준처럼 자리 잡았다. 그런데 최근 모닝스타(Morningstar) 보고서와 벤겐 본인의 신간은 같은 메시지를 다른 각도로 던진다 — 4%는 너무 보수적일 가능성이 크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에 따르면 약 60%의 사람들이 은퇴 후 자금이 떨어질까 걱정한다. 그래서 대부분이 더 안전한 숫자를 원한다. 문제는 “안전한 숫자”라는 게 보통 너무 적게 쓰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30년 후 통장에 처음 은퇴 자산의 두세 배가 남는 게 안전한 게 아니라, 그건 쓸 수 있었는데 못 쓴 돈이다.
모닝스타가 2024년 보고서에서 10가지 인출 전략을 시뮬레이션했고, 그중 변동성이 낮은 다섯 가지가 의미 있는 후보로 남았다. 거기서 출발해, 인출률을 결정하는 5가지 방식을 비교 정리했다. 모든 수치는 미국 주식·채권 기반의 USD 데이터이고, 시장·세제·환율이 다른 한국에서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구조적으로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정리하는 글로 읽어 주시면 된다.
먼저 알아두면 편한 세 가지 개념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세 단어만 정리해두면 나머지가 훨씬 빠르게 읽힌다.
- 안전 인출률(Safe Withdrawal Rate, SWR) — 은퇴 첫해에 자산의 몇 %를 빼서 쓰고, 매년 인플레이션만큼 늘려도 30년 동안 자금이 고갈되지 않는 비율. 4% 룰이 대표적인 SWR 기준이다.
- 시퀀스 오브 리턴 리스크(Sequence of Return Risk) — 은퇴 직후 몇 년간 시장이 크게 빠지면, 같은 30년 평균 수익률이라도 자산이 훨씬 빨리 고갈되는 위험. 평균만 보면 안전해 보여도 순서가 나쁘면 위험하다는 게 핵심이다.
- 가드레일(Guardrails) — 시장 상황에 따라 인출 금액을 위·아래로 조정하는 동적 룰. 시장이 좋으면 더 쓰고, 나쁘면 줄인다. 고정 인출(4% 룰)과 정반대 발상이다.

이 세 가지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면, 5가지 전략이 왜 다 다른 답을 내는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100년치 데이터가 말하는 것 — 1926년 이후 인출률
벤겐과 모닝스타는 모두 1926년 이후 30년 롤링 데이터를 본다. 즉 1926년에 은퇴해서 1956년까지, 1927년에 은퇴해서 1957년까지 — 이런 식으로 계속 굴린 시뮬레이션이다.
자산 배분별로 정리하면 이렇다.
| 자산 배분 | 최악(worst) | 평균(avg) | 최고(best) |
|---|---|---|---|
| 100% 주식 | 3.4% | 8.2% | 18% |
| 50% 주식 / 50% 채권 | 3.9% | 6.3% | 10.5% |
| 0% 주식 (채권·현금) | 2.3% | 4.3% | 9% |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두 가지다.
첫째, 0% 주식 포트폴리오의 worst가 100% 주식보다 더 낮다는 것. “주식이 무서우니 다 빼자”는 직관과 정반대다. 인플레이션이 길게 누적되면 채권·현금만 가진 쪽이 오히려 빨리 고갈된다.
둘째, 1926년 이후 worst case는 거의 한 시점에 몰려 있다 — 1966년 은퇴자다. 1969년·1973년에 은퇴한 사람도 비슷한 결과를 받았다. 세 시점의 공통점은 단순하다. 은퇴 직후 5년간 인플레이션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 은퇴 시점 | 5년 누적 인플레이션 |
|---|---|
| 1966년 | 25.2% |
| 1969년 | 30% |
| 1973년 | 약 50% |
그리고 한 번 더 들여다볼 숫자가 있다. 2020~2025년 미국의 5년 누적 인플레이션은 약 25%로, 1966년 패턴과 거의 같다. 같은 기간 미국 주식 시장은 길게 좋았다. “이름값과 기대치가 동시에 높은 구간”에 은퇴를 겹치는 사람이라면, 4% 룰의 보수성이 오히려 보험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 배경을 깔고, 5가지 전략을 하나씩 본다.
1. 4% 룰 (모닝스타 기준 3.9%) — 출발점이지만 너무 안전한 숫자
가장 유명한 룰. 윌리엄 벤겐이 1990년대 중반에 제시했고, 모닝스타가 더 긴 데이터로 갱신하면서 3.9%로 살짝 낮춘 버전을 함께 쓴다.
규칙은 단순하다.
- 은퇴 첫해, 자산의 4%(또는 3.9%)를 인출한다.
- 다음 해부터 매년 그 금액을 인플레이션만큼 인상한다.
- 시장이 어떻든 위 금액을 30년간 유지한다.
벤겐의 원본 데이터를 다시 들여다본 것은 마이클 키체스(Michael Kitces)다. 그가 정리한 결과는 의외다.
- 67% 시간 동안, 4% 룰을 따른 은퇴자는 30년 후 초기 자산의 2배를 남긴 채 끝났다.
- 50% 시간 동안, 30년 후 자산이 3배가 됐다.
- 평균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인출률은 6% 이상이었다.
- 1871년 이후 115개 30년 롤링 기간 중, 30년 후 잔액이 초기 자산보다 적었던 경우는 단 12번.
다시 말해 4% 룰은 “실패하지 않는다”는 데는 거의 100% 성공하지만, 그 대가로 3분의 2 이상의 사람이 쓸 수 있었던 돈을 못 쓰고 끝낸다.
수치로 환산하면 와닿는다. 매년 5,000만 원을 쓰고 싶다면 4% 기준으로는 12.5억 자산이 필요하다. 5%로 안전하게 쓸 수 있다면 10억이면 된다. 차액 2.5억은 보통 1년~5년의 추가 노동 기간으로 환산된다. 4% 룰을 따르는 비용은 그만큼 크다.

2. 인플레이션 조정 생략 (Forgo Inflation Adjustment)
4% 룰을 살짝 동적으로 만든 첫 단계. 룰은 거의 같다.
- 시장이 마이너스인 해가 있으면, 그 다음 해 인출액을 인플레이션만큼 올리지 않는다.
- 시장이 다시 회복되면 평소처럼 인플레이션을 따라 인상한다.
별것 아닌 룰처럼 보이지만, 시퀀스 오브 리턴 리스크를 부분적으로 회피한다. 모닝스타 시뮬레이션에서 이 룰만 추가해도 인출률이 4.25~4.3%로 살짝 올라간다. 변동성도 4% 룰과 거의 같다.
증액 폭이 크진 않지만, “내 지출은 시장과 무관해야 한다”는 강박만 빼도 인출률이 올라간다는 게 이 전략의 메시지다.
3. 전통 가드레일 (Traditional Guardrails) — 5%대로 올라가는 시작점
가드레일은 인출액을 시장 상황에 맞춰 능동적으로 조정하는 룰이다. 모닝스타가 정리한 전통 가드레일의 기본 형태는 이렇다.
- 상한 가드레일 — 자산이 충분히 늘어서 현재 인출액이 자산의 4% 미만이 되면, 인출액을 10% 증액한다.
- 하한 가드레일 — 자산이 줄어서 현재 인출액이 자산의 6% 이상이 되면, 인출액을 10% 삭감한다.
- 그 사이 구간에서는 인플레이션 조정만 한다.
핵심은 “시장이 평균적으로 80% 시간 동안 우상향한다”는 사실이다. 즉 대부분의 해에 인출액이 늘어난다. 가드레일을 적용하면 첫 해 인출률을 5% 이상에서 시작해도 30년이 무사히 굴러간다.
5,000만 원 인출 기준으로 환산하면 4% 룰 대비 2~3억 적은 자산으로 같은 은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점은 단순하다. 시장이 빠진 해엔 진짜로 지출을 줄여야 한다. 1년치 여행을 미루거나, 외식을 줄이거나, 큰 지출을 다음 해로 넘기는 식이다.
4. 자연 감소형 — JP모건 10만 명이 보여준 실제 지출 패턴
한 가지 가정을 의심하면 인출률이 또 한 번 올라간다. 바로 “은퇴자가 매년 인플레이션만큼 더 쓰고 싶어한다”는 가정이다.
JP모건이 약 10만 명의 실제 은퇴자 지출 데이터를 추적한 결과는 다르다. 인플레이션 조정 후에도 지출이 매년 줄어든다. 의료비는 점점 늘지만, 다른 카테고리(여행·외식·취미·새 차)가 더 빠르게 줄어서 합계는 감소한다.
EBRI 데이터로 보면 인플레이션 조정 가구 지출은 이렇게 움직인다.
- 65세 → 75세: 약 -20%
- 65세 → 85세: 약 -34%
- 65세 → 95세: 약 -50%
90세 넘은 어르신이 있는 집을 떠올리면 직관과 맞다. 외출이 줄고, 자동차 교체 주기가 늘어지고, 큰 여행은 거의 없다. 의료비가 늘어도 다른 지출 감소가 그걸 상쇄한다.
은퇴 첫해의 큰 지출(대형 여행·홈리노베이션·자녀 결혼 지원 등)을 제외하면, 실제로 매년 인플레이션 인상 없이 같은 금액으로 살아도 큰 문제가 없다. 이 가정을 모델에 넣으면 인출률이 약 5%로 올라간다. 변동성도 가장 낮은 그룹에 든다.
이 전략의 메시지는 “쓸 수 있는 만큼 처음에 쓰고, 그 뒤로는 늘리지 마라”에 가깝다.
5. 확률 기반 가드레일 — Bengen 신간이 제시하는 5.75~6%
마지막 전략은 가장 새롭다. 벤겐 본인이 2024년 신간 A Richer Retirement에서 제시한 방식이다. 발상의 전환은 단순하다.
“100% 성공 확률”을 고집할 필요가 있나?
4% 룰의 99~100% 성공률을 80%로 낮추면, 첫 해 인출률이 5.75~6%까지 올라간다. 90% 성공률로 잡아도 5%대 중반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80% 성공률은 충분히 보수적이다 — 80%가 무사히 끝났다는 뜻이고, 나머지 20% 시나리오에서도 즉시 자금이 사라진다는 게 아니라 막판에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모닝스타는 이 발상에 가드레일을 결합해서 좀 더 정밀한 룰을 제시한다.
- 매년 현재 시점에서의 성공 확률을 다시 계산한다.
- 성공 확률이 75% 미만이면 다음 해 지출을 10% 삭감.
- 성공 확률이 95% 이상이면 다음 해 지출을 10% 증액.
- 그 사이는 인플레이션만 반영.
- 단, 한 해 지출 변화는 최대 +5% / 최소 -2.5%로 캡(상·하한).
캡을 두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장이 폭등하면 모델상 “30% 더 써도 됩니다” 같은 결과가 나오는데, 그렇게 한 해에 갑자기 30%를 더 쓰는 사람은 없다. 현실의 지출 패턴에 맞춘 보정이다.
이 룰을 적용하면 모닝스타 보고서의 차트에서 인출률은 5%대 후반, 변동성은 가장 낮은 그룹에 들어간다. 즉 “더 쓰면서, 더 안정적”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비교표 — 5가지 전략을 한 화면에

| 전략 | 첫 해 인출률 | 변동성 | 핵심 룰 |
|---|---|---|---|
| 4% 룰 (모닝스타 3.9%) | 3.9~4.0% | 매우 낮음 | 매년 인플레이션 인상, 시장 무시 |
| 인플레이션 생략 | 4.25~4.3% | 매우 낮음 | 시장 -면 인상 스킵 |
| 전통 가드레일 | 5.0%대 | 낮음 | 자산 대비 인출률 ±20% 시 ±10% 조정 |
| 자연 감소형 | 약 5.0% | 가장 낮음 | 인플레이션 인상을 아예 빼고 같은 금액 |
| 확률 기반 가드레일 | 5.75~6.0% | 낮음 | 매년 성공 확률 재계산, ±10% 조정, ±5%/-2.5% 캡 |
5,000만 원 = 5%로 봤을 때 필요 자산이 12.5억(4% 룰)에서 8억대(확률 가드레일)까지 줄어든다는 게 이 표의 의미다. 같은 은퇴 생활을 위해 3~4억 이상의 차이가 발생한다.
물론 인출률이 높을수록 본인이 시장 상황에 따라 지출을 조정할 의지가 필요하다. 4% 룰은 정신적 비용이 0이고, 확률 기반 가드레일은 매년 본인의 자산을 들여다보는 수고가 따른다.
한국 독자 관점에서 봐야 할 4가지
위 데이터는 모두 미국 주식·채권 + USD 인플레이션 기준이다. 한국에서 그대로 쓰기 어렵다.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구조가 잘 정리되어 있다. 실제 적용 시 점검할 4가지를 추려본다.
- 국민연금 + 퇴직연금 + IRP는 베이스 인컴으로 두고, 변동 인출은 별도 자산에서. 미국식 SWR 모델이 가정하는 “단일 포트폴리오에서 인출”과 한국의 다층 연금 구조는 출발점이 다르다.
- 환율 변동이 추가 리스크다. 해외 거주 한국인이라면 자산은 원화·인출은 외화일 수 있다. 5년 평균 환율이 ±15% 흔들리는 환경에서 4% 룰은 미국보다 더 보수적으로 잡는 게 합리적이다.
- 한국 주식 + 한국 채권 데이터로 SWR을 다시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1926년부터의 미국 데이터가 보여주는 통계 안정성은 한국엔 없다. 글로벌 분산을 가정하지 않는 SWR은 위험할 수 있다.
- 세제·건강보험료 영향도 수치를 바꾼다. 인출 시점·금액에 따라 종합과세·건보료·금융소득종합과세 구간이 달라진다. SWR은 세전 기준이지만, 실제 손에 쥐는 금액은 세후다.
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투자 권유나 재무 자문이 아니다. 미국 데이터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위험할 수 있고, 실제 결정은 자격 있는 재무설계사와 상담하는 것이 정석이다. 다만 “4%만 알면 충분하다”가 아니라 5가지 옵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크다.

결론 — 숫자 하나에 묶이지 않을 자유
4% 룰이 잘못된 게 아니다. 30년간 거의 100% 성공한다는 결과는 여전히 강력하다. 다만 “실패하지 않을 확률 100%”의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게 최근 데이터의 메시지다. 67%의 사람이 30년 후 자산을 두 배 남긴 채 끝났다는 건, 그만큼 삶의 질을 미리 깎고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5가지 전략 중 정답은 없다. 4% 룰이 맞는 사람은 한 번 정한 인출 금액을 30년 동안 안 건드리고 싶은 사람이다. 가드레일이 맞는 사람은 시장에 맞춰 지출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연 감소형이 맞는 사람은 첫 해에 더 쓰고 점점 줄여도 되는 사람이다. 확률 기반 가드레일은 매년 자산을 들여다볼 의지가 있는 사람의 몫이다.
은퇴는 하나의 숫자에 인생을 거는 일이 아니다. 5가지 옵션 중 어떤 게 자기 생활 방식과 맞는지 한 번쯤 비교해 보는 것 — 그게 4%만 외우고 사는 것보다 훨씬 자유로운 출발이다.
본 글은 위 영상을 리서치 소스로 사용해, 영상에서 인용된 모닝스타·William Bengen·JP모건·Goldman Sachs 자료를 한국 독자 관점에서 재구성한 편집 콘텐츠입니다. 모든 수치는 미국 주식·채권 기반 USD 데이터이며, 시장 상황·세제·환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본 글은 투자 권유나 재무 자문이 아니며, 실제 결정은 자격 있는 재무설계사와 상담 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